영화 스페이스 워커, 희망을 버리지 마라. Spacewalker, Vremya pervykh (2017) 결말 해석 후기 리뷰

스페이스 워커

Spacewalker, Vremya pervykh (2017)

 

 

<<정보>>

 

‘예브게니 미로노프 Evgeniy Mironov’ ‘콘스탄틴 카벤스키 Konstantin Khabenskiy’ 등이 출연하고 있다.

 

연출 ‘드미트리 키셀레브 Dmitriy Kiselev’ 메가폰을 잡았다.

 

해외 7.4 평점 기록하고 있다.

 

<<개인평가>>

 

희망을 버리지 마라.

 

냉전시기였던 1965년 소련은 미국보다 앞서 우주유영을 시도하며 우주산업을 주도하려 하는데, 이를 통해 ‘희망을 버리지 마라.’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반역죄로 몰렸으나 버텨냈다.” 알렉세이(에브게니 미로노프)의 언급이 영화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드러냈다 볼 수 있는 부분이다.

 

 

1차실패/산소중독/추위=욕망, 반딧불이/자녀=미래

 

미국보다 앞선 기술을 선보이기 위해 시기를 앞당겼으나 첫 번째 무인우주선 발사실패로 예정되어있던 2차 유인우주선 발사가 무산될 위기에 쳐했다는 것(미국보다 뒤쳐진다는 절망), 우주로 향한 뒤에는 기체결함으로 조종사들이 산소중독에 빠져들게 되었다는 것(소련의 무리한 추진=패권주의인 욕망), 나아가 수동으로 지구에 불시착한 곳이 영하 35도까지 내려가는 눈 덮인 숲으로 그곳에 고립되었다는 것(그 누구에게도 의지할 곳 없는 절망, 추위는 모든 것을 앗아가는 욕망을 강조), 이 모두는 두 조종사가 눈으로 직면한 절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인데, 과연 이들은 이 절망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1차 발사실패로 1년간 준비해온 2차 유인우주선 발사가 무산될 위기는 두 조종사가 희생을 택하게 되면서, 불시착한 눈 덮인 숲에서 구조될 수 있었던 것은 두 조종사가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따뜻한 사랑으로, 또 조난신호를 외면하지 않았던 어떤 이의 관심(사랑)으로 가능했던 것이고, 산소중독이란 위기상황 극복을 어린 시절 트라우마(반역죄로 몰렸던 아버지)와 연결시킨 것은, 결국 절망과 맞닥뜨린다 하더라도 굴하지 않고 희망(사랑)을 바라본다면 그 절망을 극복해 다시 미래를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 희망(사랑)으로 찾은 자녀는 미래를 상징하는 것으로써 주제를 뒷받침 한다 볼 수 있는 것이고, 어린 시절 어둠속에서 마주한 반딧불이(빛)도 다르지 않다.

 

이렇게 까진 영화와 감독의 의도대로 긍정적으로 바라본 것이나, 여기엔 굉장한 모순점이 있다.

 

 

모순=사랑과 욕망의 차이=러시안룰렛

 

1차 무인우주선 실패 후 2차도 그 성공을 장담할 수 없어 유인이 아닌 무인으로 시험하려하자, 오히려 알렉세이가 절망 속에서 포기하지 않았던 자신의 과거사를 늘어놓음으로써 다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는 것은, 알렉세이와 파벨이 자신들의 목숨을 담보한 희생을 희망(사랑)으로 표현했다 볼 수 있는 것이나, 과연 이것이 숭고한 희생이었을까..?

 

내가 택한 희생이 숭고한 희생, 즉 사랑이 되기 위해선, 상대를 위해 기꺼이 나를 버릴 수 있는 선택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나, 이 둘이 했던 선택은 사랑이란 가정을 등진 채 미국보다 앞서겠다는 냉전시대의 패권주의(욕망)/자신들의 명예욕(욕망)에 지나지 않았다 볼 수 있는 것, 간단히 말하면 권총에 총알 한발은 넣은 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도박을 하는 러시안룰렛과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써, 그것을 희망으로 표현한 그 자체가 영화의 굉장한 모순이었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연출, 배우

 

앞서 리뷰한 러시아의 또 다른 우주영화 ‘스테이션7’ 보다 메시지와 비유면에서 많이 떨어졌다. 적어도 ‘스테이션7’은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이 들어있으나, 이 작품에선 오히려 그 패권주의를 사랑으로 포장하고 있어 메시지의 이질감이 굉장히 컸다.

스테이션7(2017)

 

사랑/욕망에 대한 이해..

http://blog.naver.com/camoju/221109312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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