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크루서픽션/크루시픽션
The Crucifixion (2017)
<<정보>>
‘소피 쿡슨 Sophie Cookson’ ‘코넬리우 울리히 Corneliu Ulici’ 등이 출연하고 있다.
연출 ‘자비에르 젠스 Xavier Gens’ 메가폰을 잡았다.
해외 5.0 평점 기록하고 있다.
<<개인평가>>
악마는 공허함을 노린다.
기자 니콜은 엑소시즘(퇴마의식)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 수녀의 이야기를 취재하게 되는데, 영화는 이를 통해 ‘악마는 공허함을 노린다.’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
“악마는 어디에나 있으며 전이된다.” 언급이 영화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드러냈다 볼 수 있는 부분이다.
1.집=내면, 공허함/증오/불신/상실=욕망, 파리/거미/성욕=더러움
자매에게 자신의 방에서 나가라했던 아델리나수녀, 여기서 방은 내면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미 그녀의 내면엔 악마가 자리했다는 반증이 되는 것이나, 그 곳 자체가 신의 품이라 할 수 있는 수녀원이었음에도 아델리나가 악마의 지배를 받게 된 근본적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처럼 따랐던 신부의 죽음(사랑을 잃다)과 그로 인해 떠오르게 된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트라우마(아비의 자살/어미의 가출=사랑을 잃다)가 내면에 자리하게 된 것, 다시 말해 내면에 존재해야할 사랑은 사라지고 상실감=욕망이 자리하게 되어 공허함이 생겨나게 된 것이고, 악마는 이 공허함을 파고들어 서서히 그녀를 잠식/타락시켜갔던 것이다.
신의 품이라 할 수 있는 수녀원에서도 악마에게 현혹될 수 있었던 것은, 실질적으로 그녀를 좌우한 건 수녀원이란 외적환경이 아니라 내면에 자리한 신념이었단 의미가 되는 것으로, 악마란 존재는 어디에든 존재하며 늘 내면에 공허함이 자리한 먹잇감을 노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니콜은 달랐을까..?
“엄마의 신에 대한 믿음이 희망을 잃게 했다.” 언급처럼, 암투병중이던 엄마가 치료보다 신의 품으로 가는 죽음을 택하자, 그런 선택을 이해 못하며 신에 대한 원망/증오=욕망을 갖게 되었던 니콜의 내면에도 그로 인한 공허함이 생기게 되었고, 악마는 이 틈을 파고들어 그녀 또한 잠식해가게 되었는데, 과연 이 악마(욕망)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참고로 그녀의 방=내면에 악마가 들어오게 되면서, 파리/거미/성욕에 빠져들었던 것은, 욕망이 주는 더러움을 강조하는 공포물의 주된 요소이다.
2.믿음=사랑, 이름을 알다.
내면에 자리한 욕망/공허함으로 악마에게 잠식되어간 니콜은 엄마에 대한 믿음이자 신에 대한 믿음=사랑을 찾게 되면서, 악마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 이것이 갖는 본질적 의미는 공허함을 안기는 욕망과 달리 사랑은 우리의 내면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는 의미, 다시 말해 내면에 사랑이 존재한다면 그 절망/악마에게 현혹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악마를 퇴치하기 위해선 우선 악마의 이름을 알아야 했는데 왜일까..? 악마란 존재는 그 누구에게도 의지할 곳 없는 혼자만의 세계인 고립/욕망 속에 있는 존재이나, 그 악마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고립/욕망 속에 있는 악마를 우리라는 사랑으로 끌어온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이 작품뿐 아니라 ‘컨저링2’속에서 악마의 이름을 아는 것이 악마를 몰아낼 수 있는 열쇠였다는 것과 같은 의미...
연출, 배우
공포물의 뻔한 비유와 메시지였으며, 주인공 니콜에 대한 클라이막스 또한 너무 가벼워 아쉬웠다.
사랑과 욕망에 대한 이해는..
http://blog.naver.com/camoju/221109312288
-인물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