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Mother! (2017)
<<정보>>
마더역 ‘제니퍼 로렌스 Jennifer Lawrence’ 연출/각본/제작 ‘대런 아로노프스키 Darren Aronofsky’ 제작 당시 데이트를 했으며, ‘제니퍼’는 클라이막스장면서 과호흡과 늑골이 부러지는 부상이 있었고, ‘대런’에 따르면 제목의 느낌표는 영화의 마지막 30분을 가리킨다고 한다.
해외 7.0 평점, 제작비 3천만 달러를 투자해, 미국 내 1천7백만/총4천4백만 달러의 수입을 기록했다.
<<개인평가>>
우리는 욕계에 산다.(윤회사상)
한적한 숲속에 살아가고 있던 마더(제니퍼 로렌스)와 남편(하비에르 바르뎀)의 집으로 불청객들이 찾아오게 되면서 이들의 삶은 망가져가게 되는데, 영화는 이를 통해 ‘우리는 욕계에 산다.’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
“저들을 용서해야 한다.” 남편의 연급이 영화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드러냈다 볼 수 있는 부분이다.
1.집/지하=내면, 고립/불신/시기/질투/증오/오일=욕망, 원석/벌=순수성/사랑
불청객들이 쳐들어 온 뒤 남편과 그들에 대한 불신/시기/질투/증오=욕망이 생겨날 때마다 집이 검게 변해가며 망가져가게 되었다는 것, 여기서 집은 내면을 비유한 것으로, 그녀의 내면에 무엇이 자리하느냐에 따라 외적인 삶 또한 함께 변화된다는 본질적 의미를 드러냈다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즉 우리의 삶은 내면에 자리한 신념에 의해 좌우된다는 의미...
이 연장선상에서 집과 주변의 숲을 살려낸 원석을 보게 되면, 그 원석은 인간의 더러운 욕망에 때 묻지 않는 순수성=사랑을 상징한 것으로써, 내면에 사랑이 자리한다면 외적 삶 또한 진정한 미래/행복을 맛볼 수 있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나, 불청객들로 인해 그 원석이 깨지게 되었고, 그 방문을 완전히 봉인했다는 것은, 내면에 존재해야할 사랑을 잃은 채 앞선 언급처럼 그들을 향한 욕망만이 자리했다는 의미가 된다 볼 수 있다. 살인이 있은 후 벌(기본적으로 꽃씨=생명을 옮기는 벌은 사랑을 상징)이 집안에서 죽었다는 것은, 생명=사랑이 사라진 욕망=절망을 상징...
이러한 집에서도 나름 흥미롭게 다가온 부분은 지하실에 자리한 오일탱크와 그 집이 외부로부터 철저히 고립(통신차단/사람들의 손길이 쉽사리 닿지 않음)되어있었다는 점인데, 집=내면에서도 지하는 인간의 깊은 속내, 숨겨진 속내를 상징하는 것으로, 그 깊은 내면에 이미 오일=욕망이 자리했었다는 것은, 서양종교서 말하는 아담의 원죄=욕망(인간은 죄인이다), 동양종교서 말하는 인간은 욕계(기본3욕-식욕/수면욕/성욕 존재하는 지옥)에 살아가는 욕망(전생의 업)의 동물이란 의미를 강조했다 볼 수 있는 것, 나아가 그 누구에게도 의지할 곳 없는 혼자만의 세계인 고립 자체도 욕망의 의미를 뒷받침한다 볼 수 있다.
호러/스릴러물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집 내에서도 숨겨진 지하실or다락방으로, ‘겟 아웃/제인 도/크림슨 피크/엘르/맨 인 더 다크...’ 모두 그간 외면해왔던 숨겨진 절망=욕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나, 이 작품에선 과거에서 비롯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에, 위에서의 언급처럼 서양에서 바라보는 아담의 원죄or동양에서 바라보는 전생의 업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을 참고하면 될 것이다.
겟 아웃(2017) 오텁시 오브 제인 도(2016) 크림슨 피크(2015) 엘르(2016) 맨 인 더 다크(2016)
그렇다면 이들을 또 다른 미래와 절망으로 이끈 자녀는 무엇을 상징했을까..?
2.자녀=미래, 시=감성, 석류=지옥, 마더=희생의 본질은 사랑이다.
자녀가 생겨나게 되면서 집(내면)의 치유와 삶의 활력을 찾게 된 마더, 다시 영감을 얻어 시(감성=사랑)를 쓰게 될 수 있었던 남편의 모습은, 사랑의 결실인 자녀 자체가 우리의 미래를 상징했다 볼 수 있는 것, 다시 말해 내면에 사랑이 자리해야 미래를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를 드러냈다 볼 수 있는 것이나, 불청객들이 그 자녀를 난도질 해 먹어버렸다는 것은, 미래를 잃은 채 절망/지옥에 빠져들게 되는 극한의 절망을 강조했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절망/지옥에서 마더는 남편(신=사랑)에 대한 믿음(사랑)보다 불신/증오=욕망을 택하게 되면서 지하(깊은 내면)로 내려가, 그 곳을 모두 불태우게 되었으니, 이는 그녀의 욕망이 모든 것을 앗아가는 지옥불을 만들어냈다는 것이고, 이후 남편이 그녀의 몸에 남은 원석(마지막 남은 순수성=사랑)으로 다시 집과 또 다른 외면의 그녀를 살려내 그 절망이 반복되었다는 것은, 욕계=욕망(절망)이 반복되는 윤회사상을 강조했다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만약 마더가 악마의 달콤한 유혹=욕망에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닌 남편(신)에 대한 믿음을 찾아 자녀를 앗아간 원수를 용서(욕망을 버리다)하는 사랑을 바라보았더라면, 욕계=윤회에서 벗어나 진정한 미래(서양서 말하는 천국/동양서 말하는 열반)를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참고로 남편에게서도 아이를 지키려던 마더 옆에 다 먹은 석류가 있었다는 것은(속만 파먹은), 그리스로마신화 속 하데스(지옥의 신=욕망)가 건넨 석류 몇 알을 먹어 이승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그의 아내가 된 페르세포네를 마더로 비유했다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마더=어머니가 갖는 상징성은 자녀를 잉태하는 고통을 견뎌낸 뒤, 또 다시 자녀(미래)를 키워내는 헌신=사랑을 강조한다 볼 수 있는 것으로, 이는 상대를 위해 나(나만을 생각하는 욕망)를 버릴 수 있는 그 희생의 본질이 바로 사랑이란 의미를 강조하는 것, 즉 앞선 언급처럼 마더가 이 같은 진정한 의미의 사랑(내 욕망을 버린 뒤 원수마저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랑)을 택했더라면,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단 의미이다.
위 내용을 종합하면, 우리 인간은 욕계(지옥)속에 살아가는 욕망의 노예이나,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 끝은 극과 극이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연출, 배우
눈앞에서 자녀가 난도질당한다면 누구나 우선 분노/증오(욕망)를 택하지 않을까..? 이 같은 당연한 선택지보다도, 마더 내면에 자리한 욕망이 자녀를 죽음으로 내몬 뒤, 그 책임(허상=욕망에 젖어)마저 타인에게 물어가며 끝내 악녀가 되었다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끌고 갔더라면, 더욱 그 욕망에 대한 의미가 강조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타인의 불신(욕망)이 마녀를 만들어낸 ‘더 위치’처럼...
센세이션함은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전작, 헛된 희망의 본질인 욕망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낸 ‘레퀴엠’보다는 약했다.
이 영화는 ‘매트릭스’처럼 윤회사상이란 기반(시작과 끝) 위에 서양종교+그리스로마신화적 비유가 더해졌다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아닌 서양종교적 관점으로만 본다면, 그 절망의 반복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겠는가...? 동서양의 종교가 겉으론 다르게 보일지라도 기본적으로 종교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사랑vs욕망으로 모두 같다 말할 수 있다.
영화를 좀 더 흥미롭게 이해하기 위해선 욕망=욕계의 의미와 사랑의 본질적 의미를 이해해야 되는데, 아래 포스팅을 참고 하면 될 것이다.
http://blog.naver.com/camoju/221109312288
-인물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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