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인생은 어둠속에서 빛을 찾는 과정이다.(사랑이 아니면 죽음이다.) 君の名は。, your name (2016)

너의 이름은

君の名は。, your name (2016)

 

<평 점> (4.5 / 5) 기준 (0~1.5개: 비추천, 2~2.5개: 시간 될 때, 3~5개: 추천)

<평 가> 인생은 어둠속에서 빛을 찾는 과정이다.(사랑이 아니면 죽음이다.)

 

<<정보>> 해외평점기준(imdb) (0~6점: 비추천, 6~7점: 호불호, 7~10점: 추천)

 

미야미즈가족 이름의 첫 번째 일본식한자어는 Hitoha (1)/Futaba (2)/Mitsuha, Yotsuha (3 & 4) 숫자를 의미한다고 한다.

 

타키가 일한 "Il giardino delle parole" 이탈리아 레스토랑명은 감독의 이전작 "Garden of words" 의미, 학교의 교사이름도 이전작에서 따왔다고 한다.

 

Studio Ghibli 제작사/Hayao Miyazaki 연출작이 아닌 작품으로 일본에서 처음 100억엔 이상의 수입을 기록한 애니가 되었다.

 

해외 8.7 평점, 총2억8천1백만 달러의 수입을 기록중이다.

 

<<개인평가>>

 

인생은 어둠속에서 빛을 찾는 과정이다.(사랑이 아니면 죽음이다.)

 

서로의 몸이 바뀌는 것을 꿈이라 생각했던 것도 잠시 현실이란 것을 인지한 후 서로에게 가까워졌을 무렵 예기치 못한 운명은 미츠하(카미시라이시 모네)와 타키(카미키 류노스케)를 갈라놓게 되는데, 영화는 이를 통해 ‘인생은 어둠속에서 빛을 찾는 과정이다.’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

 

“잠에서 깨면 희미해진다.” 언급이 영화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드러냈다 볼 수 있는 부분이다.

 

 

1.무스비/끈목=시간=사랑,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미야미즈의 절망

 

할머니가 시간=공들여 만들던 끈목을 가리켜 무스비라했던 것, 여기서 이 무스비=시간의 흐름은 무엇을 의미한다 볼 수 있을까..?

 

오래전 대재앙이 있던 곳에 사랑의 손길이 타고 한참의 시간이 흐르게 되면서 다시 새싹(생명)이 자라나 누군가의 안식처=고향(사랑)으로 자리하게 되었다는 것,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시간의 흐름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고, 이러한 세상=자연의 섭리는 사랑에 기반 한다는 메시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사랑의 결실로 우리의 미래를 상징하는 자녀(탯줄)가 만들어지고, 그 자녀가 다시 아이를 낳는 다는 것은, 우리의 육체는 사라지더라도 사랑은 시간 속에 영원하다는 의미가 되는 것(인류의 본질은 사랑이란 의미=시공간초월), 나아가 미츠하와 타키가 사랑을 하게 된 것도 오랜 기간 서로의 몸을 공유하게 되면서 그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해왔기 때문으로(사랑은 이해다), 이는 무스비=시간 자체를 사랑이라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언급을 왜 했는가하면, 시간이 곧 사랑이라 한다면, 역으로 그 사랑을 통해 뒤틀린 시간을 바로 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몸이 바뀌지 않는 것에 대한 답을 찾아 떠난 타키는, 시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그곳에서 과거의 미츠하를 구해내게 되었으니, 이것이 갖는 의미는 결국 우리의 몸은 사라질지라도 사랑이란 감정은 시간 속에 영원하다는 것, 다시 말해 사랑만큼은 시공간을 초월한다는 의미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무스비=시간/사랑을 상징하는 끈목을 미래에 있던 타키가 과거의 미츠하에게 주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한다는 모티브로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거에 있던 미츠하는 홀로 마을 사람들 모두를 구할 수 있었을까..? 오래전 아내(사랑)를 잃은 뒤 집을 뛰쳐나갔던 아버지이자 마을장 미야미즈의 내면에는 욕망(절망/불신..)만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딸 미츠하의 터무니없는 말을 믿게(믿음=사랑) 되면서 자녀는 물론 마을 사람들을 기적적으로 구해내게 되었다는 것, 이 또한 위 의미를 뒷받침 한다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것이 메시지의 끝이었을까..? 영화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게 된다. 이 모든 것을 꿈으로 설명함으로써...

 

 

2.꿈/희망/너의 이름=사랑, 사랑이 아니면 죽음이다.

 

애틋하고 아련했던 사랑도 잠시, 방금 전까지 알았던 서로의 이름을 잊은 것처럼, 그 아름다웠던 사랑은 꿈처럼 희미해지게 되는데, 과연 여기서 이 꿈이 갖는 본질적 의미는 무엇일까..?

 

단순히 잘 때 꾸는 꿈이 아니라 우리가 지닌 희망/미래(꿈)를 의미하는 것이고, 이 본질은 다름 아닌 더러움에 찌들지 않는 순수한 열정=사랑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이러한 의미에서 ‘택시 드라이버/매릴랜드..’ 속 주인공들이 꿈을 꾸지 못하는 불면증에 시달렸다는 것은 자연히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 절망/욕망에 놓여있다는 의미가 되는 것...)

 

즉 이러한 꿈=사랑을 잃은 채 취업난에 허덕이며 살아갔던 타키와 내면의 안식처인 고향마저 잃은 미츠하는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 절망 속에 놓여있던 것이나, 서로를 마주하게 되면서 잊혀져가던 꿈=사랑을 붙잡아 다시 일어서게 되었으니, 이는 이제야 비로소 잃었던 사랑을 통해 다시 미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위플래쉬’ 속 욕망에 찌들었던 주인공이 과거의 영상=꿈(사랑)을 찾게 되면서 동시에 옛 연인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것도 같은 의미...)

 

 

취업난에 허덕였던 타키와 방황했던 미츠하는 단순히 영화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일찌감치 꿈=순수한 열정(사랑)을 포기한 채, 그 이름(꿈=희망)이 무엇인지 기억하려는 노력도 잊은 채, 현실의 절망과 타협해 무의미한 죽은 삶(사랑이 아니면 죽음이다)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대변 한다 볼 수 있는 것, 즉 영화는 희망을 잃은 모든 이들에게 희망/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위 내용을 종합하면 숱한 좌절과 절망 속에서도 희망/사랑을 포기하지 않다는 다면 언젠간 인생의 빛(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인생은 어둠속에서 빛을 찾는 과정이란 의미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연출, 배우

 

할머니가 손녀 미츠하에게 했던 “네 나이 때 나도 꿈이 있었다.” 언급은,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은 노인은 자연히 미래를 잃어가고 있다는 의미를 내포했다 볼 수 있는 것이나, 이는 꼭 그렇지만 않다.

 

같은 의미를 드러낸 ‘유스’리뷰에서 언급했듯, 인생은 보는 시각에 따라 변하기 때문, 결국 할머니의 언급은 메시지의 모순점이 되었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을 보는 그대들이여, 아직 늦지 않았으니, 욕망(죽은 삶)이 아닌 희망을 쫓아라!!

 

-인물 리뷰

카미시라이시 모네   카미키 류노스케   나가사와 마사미   신카이 마코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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