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도빌,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다. The Siege of Jadotville (2016)-자도빌 포위작전

자도빌 포위작전

The Siege of Jadotville (2016)

 

<평 점> (3 / 5) 기준 (0~1.5개: 비추천, 2~2.5개: 시간 될 때, 3~5개: 추천)

<평 가>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다.

 

<<정보>> 해외평점기준(imdb) (0~6점: 비추천, 6~7점: 호불호, 7~10점: 추천)

PJ역에 참여하고 있는 ‘코너 퀸란 Conor Quinlan’ 배우는 실제 퀸란사령관의 손자라고 한다.

 

연출 ‘리치 스미스 Richie Smyth’ 의지로 출연배우들은 몇 주간 South Africa 군사훈련소에 들어가 실제 군인들과 같은 훈련을 받았다.

 

자도빌전투는 오랜 기간 논란이 많은 UN의 무능력한 리더십부재에 따라 음모설(은폐)로 취급되어왔다.

 

해외 7.3 평점을 기록하고 있다.

 

 

<<개인평가>>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다.

 

1961년대 냉전이 고조되던 시기, 광물자원을 두고 내전을 벌이던 콩고지역에 아일랜드 UN군이 투입되는데, 영화는 이를 통해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다.’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

 

“정치인은 전술을 모르고, 군인은 전략을 모른다. 허나 카이사르는 모두 알았다.” 퀸란(제이미 도넌)사령관의 언급이 영화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드러냈다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참고로 전술은 전투방법을 의미, 전략은 전술보단 상위개념으로 큰 방향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1.퀸란사령관=현명vs코너=무능

 

UN콩고지부장으로 있던 코너(마크 스트롱)박사가 했던 “큰 그림을 봐야한다.” 언급은, 앞선 언급처럼 큰 방향성인 전략을 의미한다 볼 수 있는 것이나, 이 큰 그림을 바라보기 위해선 전제가 필요하다. 그것은 디테일한 작은 그림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하는 것, 과연 코너는 그러했을까..?

 

콩고의 촘베장군을 압박하고 제거하려는 작전에 올인했다 실패하게 되면서 UN자체가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은, 작은 그림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 채 큰 그림만을 바라보려했던 코너의 무지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볼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전쟁에 처음 참전한 아일랜드군을 이끌던 사령관 퀸란은 전투기술인 전술은 물론 핵무기의 원료인 우라늄이 생산되는 자도빌이 전략적요충지란 것을 간파(큰그림=전술)했고, 마지막엔 무모한 죽음이 아닌 항복(전술)을 택함으로써 훗날을 도모한 결과 사망자 없이 모두를 고국으로 돌려보내게 되었으니, 이것이 갖는 의미는 큰 그림만 보려다 모두를 놓쳐버린 코너와 달리 작은 그림을 넘어 큰 그림까지 바라봤던 퀸란의 현명함을 드러냈다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허나 역사는 이들을 다르게 기록하게 된다. 왜였을까..?

 

 

2.코너=허울뿐인 영웅, 거짓/욕망은 진실/사랑을 이길 수 없다.

 

자신의 과오를 덥고자 했던 코너는 그 희생양으로 끝내 항복을 택한 아일랜드군을 패자로 만들고 자신은 빠져나가 영웅이 되었으니, 이는 결과가 수단(실수를 은폐)을 정당화 해버렸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허나 한참의 시간이 흘러 2005년이 되어서야, 그 진실이 모두 드러나 아일랜드군이 과거의 오명을 벗고 영웅으로 칭송받을 수 있었다는 것은, 결코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다는 의미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아군을 살리기 위해 했던 퀸란의 마지막 선택이 항복이라 하여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용감히 싸운 그 과정까지 매도할 수 없다는 것도 주제를 뒷받침한다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연출, 배우

 

무능한 것들이 높은 직책을 꿰차고 앉아 행위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어 편협에 빠져 오만하기까지 하다면 단체, 나아가 나라꼴은 엉망이 되고 만다.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

 

-인물 리뷰

제이미 도넌   피오나 글라스콧   엠마누엘 자이그너   마크 스트롱   제이슨 오마라   기욤 까네   미카엘 페르스브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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