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웨어 핸즈 터치, 전쟁/욕망은 모든 것을 앗아간다.(나치즘, 백인우월주의) Where Hands Touch, 2018 결말 해석 후기 리뷰

웨어 핸즈 터치

Where Hands Touch, 2018

 

 

<<정보>>

‘아만들라 스텐버그 Amandla Stenberg’ ‘애비 코니쉬 Abbie Cornish’ ‘조지 맥케이 George MacKay’ 등이 출연하고 있다.

 

연출/각본 ‘엠마 아산테 Amma Asante’ 메가폰을 잡았다.

 

해외 5.4 평점, 미국 내 $67,743 수입을 기록했다.

 

<<개인평가>>

 

전쟁/욕망은 모든 것을 앗아간다.

 

1944년 혼혈아였던 레이나는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히틀러의 인종청소 대상이 되어 수용소에 갇히게 되는데..

 

“나에겐 너희들이 전부다.” 커스틴의 언급, “이건 전쟁이 아니다.” 루츠의 언급이 주제를 드러냈다 볼 수 있다.

 

 

1.나치즘(백인우월주의=파시즘)/자괴감/죄책감=욕망, 자녀(루츠)=미래

 

군에 입대해 전우들과 함께 싸우길 바랐던 루츠를 비롯해 나치들은 자신들이 주도한 2차대전이 독일을 강하게 만든다(미래) 여겼으나, 그러했을까..?

 

독일에서 나고 자란 레이나였지만 혼혈이란 이유로 유대인과 함께 히틀러의 인종청소 대상으로 낙인찍히게 되면서 수용소에 갇혀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 자괴감에(스스로불신=욕망) 놓였다는 것, 군에 들어가 함께 싸우길 바랐던 루츠는 참혹한 현실을 보며 죄책감에(스스로증오=욕망) 놓이게 되었고, 어린아이들이 히틀러의 세뇌교육을 받으며 편협한(내 관점=욕망) 시각에 사로잡혔다는 것, 이 어린아이들과 십대 레이나와 루츠는 독일의 미래를 드러낸 것으로써, 결코 나치즘이 미래가 될 순 없었단 의미가 되는 것, 다시 말해 백인우월주의인 나치즘은(내민족/내나라만 생각하는 욕망) 미래가 아닌 스스로를 타락시켜갈 뿐이었단(편협한 사고에 갇힌 괴물->자괴감/죄책감..) 의미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는 루츠의 아비 헤이츠에게서도 그려지게 된다.

 

나라보다도 자신의 살길만 생각했던 헤이츠는 나치즘의(나 자신만 생각한 욕망) 투영이 되는 것으로, 혼혈아 레이나를 사랑하게 된 자신의 아들 루츠로 인해 혹시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까 직접 아들을 쏴죽인 비정한 아비 헤이츠의 모습은, 그 욕망이 자신의 미래를 타락시켜갔단(미래인 아들 루츠의 죽음) 강조가 되는 것..

 

욕망이(나치즘=전쟁) 이러했다면 반대인 사랑은..?

 

 

2.희생=사랑

 

주변의 손가락질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히 2자녀를 홀로 키워내며 자녀들에게 올곧은 신념을 심어준 것은 물론 레이나를 대신해 수용소행을 택한 커스틴의 모성애(희생=사랑), 나아가 수용소에 갇힌 레이나와 뱃속 태아를 보호하려 위험을 무릅쓴 루츠의 희생으로(사랑) 레이나가 무사할 수 있었다는 것은, 미래는 사랑에 있음을(나 자신만 생각하는 욕망=나치즘이 아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레이나의 뱃속 태아는 미래를 강조한 것으로, 비록 루츠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사랑은 레이나의 삶이 그러했던 것처럼 뱃속 태아에게로 이어져 미래를 함께 살아갈 것이란(사랑의 영원성..) 의미가 되는 것..

 

 

연출, 배우

 

영화에선 헤이츠의 이기심을(욕망) 나치즘으로 비유했는데, 과연 헤이츠가 자신만 생각한 것이 아닌 나라를 위해 전장으로 나갔다면 그것을 이기심의 반대인 숭고한 희생=사랑이라 말할 수 있었을까..? 즉 비유가 적절하지 않다 보니 영화적 메시지도 퇴색되고 말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사랑/욕망

https://blog.naver.com/camoju/221109312288

 

-인물 리뷰

아만들라 스텐버그   애비 코니쉬   조지 맥케이   크리스토퍼 에클리스턴   엠마 아산테

 

+ Recent posts